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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인가 속명인가
.. 2005년03월22일 18시51분
“김모 씨는 OO사 승려”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2004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전체수석과 차석을 모두 스님이 차지했다고 합니다. 학업에 정진해 모범이 되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국대 경주캠퍼스 대외협력팀이 배포한 보도자료가 말썽을 빚었습니다. 스님들을 칭하면서 법명이 아닌 속명으로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끝부분 괄호 안에 법명을 적어 넣기는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몇몇 언론에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써 “OOO 씨는 OO사 OO암 소속 승려”라고 보도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스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보도자료가 오히려 스님을 깎아내리는 결과를 불러온 것입니다. 과연 그 보도자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육 목표로 삼는 종립학교가 작성한 문서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전에는 천성산과 뭇 생명을 살리겠다며 100일간에 걸친 처절한 단식정진을 한 지율스님을 두고 ‘스님’이라는 극존칭은 써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님’이라는 단어는 ‘스’ 자에 존칭 어미 ‘님’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라, 이미 출가 수행자를 지칭하는 명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남과 함께 고유의 이름을 받듯이 속세와 절연하고 불가에 들면 누구나 법명(法名)을 받습니다.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가 이전의 삶이 속세의 인연과 법칙, 관습에 따라 살아온 것이라면 출가를 해 법명을 받은 이후의 삶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과 수행의 잣대로 삼아 살아가겠다는 상징적인 의미 또한 포함하는 것입니다.

법명은 불제자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

물론 재가불자도 일련의 과정을 거쳐 법명을 받습니다. 보살계나 재가오계를 엄정히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부처님 전에 다짐하고 받는 것이 법명인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는 법명과 비슷한 ‘새로운 이름’은 없었다고 합니다. 초기불교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사분율>에도 출가 수행자에게 별도의 법명을 주었다는 구절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난존자, 아나율, 부루나, 나후라 등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 마하카샤파(마하가섭)을 제외하고는 제자 중에도 새로운 이름을 받은 분은 없습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출가승의 법명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증일아함경 팔난품>에는 출가 수행자는 모두 부처님의 일불제자라는 의미에서 ‘석’씨를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한국불교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법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명은 부처님의 일불제자인 동시에 스승이 지어준 새로운 이름으로 수행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징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어떠한 스님과 관련한 사안을 보도할 때 ‘승려 OOO씨’라는 표현이 일반화 됐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동국대학교의 ‘사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일이었습니다. 동국대학교 새학기 수업에서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교수님이 출석부에 적힌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자신의 속명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인스님들의 눈빛과 마주치는 일이죠. 출석부야 학교 공식문서이고, 스님들 역시 속명으로 학교에 등록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문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에서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한다면 적지 않은 학인 스님들을 위해 법명을 먼저 쓰고 속명은 괄호 안에 넣는 방안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스님인지 아닌지…’

동국대학교에서 법명과 속명의 문제는 비단 학인스님들에게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새학기를 앞두고 발간되는 강의시간표에는 스님교수님들의 이름 역시 속명과 법명이 함께 표기됩니다. 전호련 교수(해주스님), 장애순 교수(계환스님), 최창술, 한태식, 강문선, 박문기 교수…. 속명이 앞에서는 상황에서 스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속명만을 보고 스님인지 아닌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법명을 먼저 써 스님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법적으로 어떤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요. 동국대학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조계종에서 발급하는 승려증 역시 법명을 사진 아래 두고 사진 옆으로 승려번호와 성명(속명), 주민번호를 쓰는 난이 있습니다. 행정적 편의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불가피하게 필요한 속명보다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서 새로이 받은 법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작은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계종 종법상에 나타난 각종 양식도 속명을 쓰는 난이 먼저 있는 양식이 있는가 하면 법명을 먼저 쓰고 ‘성명(속명)’을 그 뒤에 붙이는 양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단 선관위의 서식을 보면 <선거 입후보자 등록신청서>의 경우 성명(속명)을 먼저 쓰고 법명을 괄호 안에 쓰도록 하고 있지만, 투표용지는 법명을 먼저 쓰고 괄호 안에 성명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명과 속가 이름의 선후가 무어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출가 수행자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이자 원론적인 문제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법명과 속명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속가 성(姓) 사용도 문제

속명의 사용이 불가피할 때도 있습니다. 재산권을 명시하거나, 여타의 이유로 재판 등의 사법절차를 밟게 된다거나, 행정적인 문제로 관공서와 관계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 앞에서는 속명을 써야만 합니다. 사실 속명이 없으면 사회생활의 영위가 불가능 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가수행자로서는 최소화해야 할 일이지, 편의를 위해 계를 받고 법명을 받은 참뜻을 감추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속명과 법명 문제 이전에 속가의 성을 쓰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앞에서 ‘부처님의 일불제자’라는 의미에서 ‘석’씨를 쓰는 전통을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불교에서는 여전히 속가의 성을 붙여 법명에 쓰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같은 법명을 쓰는 ‘동명이인’ 스님들이 많아서 인가요, 아니면 ‘속세와의 인연은 끊었지만 낳아주신 부모님은 잊지 않겠다’는 효심의 발로인가요. 제가 과문한 탓에 속가 성을 쓰는 참 뜻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다른 이에게 불리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바라문도 아니고, 왕자도 아니고,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머리와 수염을 깎고 수행하는 일개 수행자 일뿐이라오.”라고. 그러나 우리 안에서 먼저, 선후를 따져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법명과 속명의 문제.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불교집안 안에서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것인 아닌지, 그 불감증이 우리 불교를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출처 : 불교정보센타 ⓒ 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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