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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위의 부석사 추억
.. 2004년03월17일 22시20분
기사 사진    
일주일쯤 떠날 수 있다면 부석사에 가고 싶다.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일주문 밖 흙길은 안녕하시고 선방 앞 울타리도 무고하신지, 내리쬐는 햇살을 한가득 품은 무량수전 앞뜰도 궁금하다. 부석사에 간다면 울력을 하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하루 세번씩 백팔배를 하고 새벽예불 가는 길에 별도 보고 싶다. 가끔은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순간을 잡기 위해 셔터를 누르고도 싶다. 늘 떠남을 생각할 때 1순위는 부석사다. 그리움도 아니고 뿌리를 찾아가는 의식도 아니며 종교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꽤 오랫동안 아침방송을 하며 각 지방의 풍물을 소개했던 나는, 덕분에 참도 많이 돌아다녔다. 취미로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꿈도 못 꾸었을 곳까지 전국팔도를 두루 다니며 촬영하고 구경하며 맛난 것도 먹고…. 그야말로 호강하는 역마살을 타고 난 듯하다. 그러나 정작 내 인생의 풍경이라면 촬영이 아닌, 번뇌를 짊어진 속세의 사람으로 다녀왔던 부석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저 나를 받아주었던 곳. 다친 영혼을 쉬게 해주었고 치유될 때까지 말없이 자리를 내주었던 곳. 그렇게 부석사는 내 인생의 아련한 바탕화면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1999년 가을.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을 때 난생 처음 혼자만의 여행길을 준비했고 그 목적지는 부석사였다. 당시 친구들은 이미 부석사의 열성 팬들이었다. 선배 중에는 부석사에 다녀와 출가한 이도 있었으니 가보지 않고도 이미 다녀온 듯 익숙한 곳.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다다른 풍기역의 대합실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차 시간에 맞춰 한 차례씩 우르르 몰려나가고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의 짧은 소란, 그리고 뒤에 남는 긴 적막. 따스하게 들이치는 햇볕까지…. 시골역의 대합실은 그야말로 평화였다. 요란한 네온사인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낼 듯이 솟아오른 고층건물이 주인처럼 행세하는 서울에서 초라하게 파묻혀 살던 나는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낮게 들어서 있는 풍기 시내가 무척 낯설었다. 마치 미니어처 속을 걷는 거인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부석사의 첫 느낌은 묵중한 무게감이다. 겹겹이 파도치는 듯한 소백산 자락에 폭 파묻혀 있으니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세월의 무게감이 꼿꼿하게 서 있는 사찰. 배흘림 기둥의 대명사라고 외웠던 무량수전의 실체를 확인하며 감격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무작정 사찰을 찾아간 것도 처음이려니와 스님들과 마주앉는 것 역시 처음이었던 나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그러나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나서부터는 알고 지내온 사이처럼 스님들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내가 왜 그곳을 찾았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후로 두번, 세번 발길이 이어지면서 부석사는 무량수전의 유명세보다 스님들의 따스함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어느 해에는 부석사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언제 가고 오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고가는 나를, 스님들은 집에 왔느냐며 반가이 맞아주셨다. 송이차, 보이차 등 아낌없이 내주시는 귀한 차를 마시면서 세상살이에 지쳐있던 마음은 어느새 위로를 받고, 텅 빈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부석사의 추억’도 있다. “아~달콤해”. 달맞이꽃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이다. 절에 머무는 사람들이 스님들과 밤길을 나섰다. 구름이 가렸다 비켰다 할 때마다 보름달이 밝히는 길도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코끝을 이끄는 향기를 따라가니 달맞이꽃이다. 달과 함께 피어나 한아름 뿜어내는 달콤한 향기. 눈보다 코가 먼저 진가를 알아보고 나니 이번에는 혀끝으로 맛을 본 것처럼 진한 달콤함이 온몸을 감쌌다. 그 후로 부석사는 달맞이꽃이 됐다.

산사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그리고 깊다. 까만 하늘,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다다른 무량수전에는 오직 불경 외는 소리와 목탁소리뿐….

나뭇결 따라 앉아 바깥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점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남처럼 보인다. 무간지옥 같은 세상을 빠져나와 맞이하는 평온함.

점차 명징해지는 정신으로 만나는 나의 모습. 그렇게 새벽예불 시간은 잊고 있던 나와 만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공간이다.

오고 감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방을 정리하고 물건을 챙겼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하나 떨어져 있다. 주워 담는다. 그런데 또 하나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서 머리카락이 뒹굴고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어디선들 안 그럴까. 구태여 애를 써서 남기려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남는 것인데…. 떠날 때마다 스님은 물으신다. 언제 또 집에 올 거냐고.

며칠 전부터 맴돈다. 가야 하는데, 봄기운 한아름 묻혀서 와야하는데.

/SBS TV 다큐멘터리 방송작가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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